개요
악의 길 (La Via Del Male)
그라치아 델레다 / 이현경 역 / 휴머니스트 / 364쪽
‘여성작가’, ‘노벨문학상’, ‘국내 초역’. 흥미로운 키워드는 다 들어간 책 소개, 게다가 제목은 ‘악의 길’이다. 홀린 듯이 책을 들었다. 한국 드라마 부럽지 않게 흥미진진한 전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용꼬리 결말이 마음에 든다.
원 제목은 [La Via Del Male]이며 직역해도 ‘악의 길’이다. 이탈리아 번역서라서 중간중간 원어를 살려야 하는 부분은 각주가 달려있다.
사랑과 전쟁, 로맨스릴러를 한 권에
부모의 반대, 세상의 시선,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어… 한창 주말 연속극이 흥행할 때 보던 스토리는 이랬다. ‘악의 길’도 몹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하는 피에트로, 구애에 점차 마음을 여는 마리아. 하지만 피에트로는 마리아네 집 하인이고, 마리아는 지주의 딸이다. 결국 마리아는 사랑하지는 않지만 부유한 프란체스코와 결혼하고, 피에트로는 질투심에 휩싸인다. 사랑과 전쟁 같은 로맨스인가? 하고 읽다 보면, 스릴러가 되어있다.
“마리아가 드디어 프란체스코 로사나와 약혼하기로 결정했다네. 토스카나인 말로는 자기가 마리아를 설득했다고 하더군.” 농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171]
“아니, 그럴리 없어. 피에트로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자네가 잘못 안 거야. 마리아는 프란체스코의 청혼을 거절했어.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172]
이 즈음 나는 ‘악의 길’이라는 제목이 피에트로가 선택한 길이라서 제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까지가 악이며 중립은 얼만큼인가? 그건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 마리아도 사비나도 절대선이 아니다. 피에트로가 복수를 선택했지만 처음부터 악은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사랑하던 청년이다. 사비나도 나쁜 의도로 범죄를 함구한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에서 걸음을 멈출까?’ 그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192]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적인 갈림길은 마지막에 나온다. 마리아는 피에트로와 함께 하면 그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과 동시에 살인자와 살아야 한다. 피에트로를 떠나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동시에 피에트로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최악과 차악은 구분할 수 있다. 피에트로와 사는 것은 범죄를 눈감아주는 일이고, 후자는 그나마 죄를 고발하는 일이 되니까. 나였다면 도망갈 준비를 차근차근해서 피에트로를 고발했을지도.
소설 인물의 상황은 극단적이었으나, 100년 후 현실에도 이런 선택이 비일비재하다.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핑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굴리는가? 매 순간 선한 길을 걷겠다 다짐하지는 않지만, 옳은가? 하고 한번 더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책을 읽는 내내 인물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지 마! 정신 차려! 하고. 100년 후 미래에서 누군가 내 삶을 알고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 걸고 싶을까? 파리의 연인, 아내의 유혹 그 어떤 드라마도 부럽지 않은 책이다.